책이 있는 풍경
책이 있는 풍경
  • 홍갑의 기자
  • kuh3388@hanmail.net
  • 승인 2012.10.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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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전남도교육청 교육진흥과 장학관
   
 
▲ 장병호 전남도교육청 교육진흥과 장학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렀을 때 반가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매점 옆에 놓여 있는 도서판매대이다. 몇 년 전부터 휴게소에 이런 판매대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나는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면 으레 이곳으로 발길이 닿곤 한다. 특별히 책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심심풀이로 구경삼아 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개 <카네기 인간관계론>과 같은 처세술 서적을 비롯하여 <성공하는 사람은 이런 점이 다르다>와 같은 자기계발서, <암을 이기는 건강법>과 같은 건강지침서 따위가 꽂혀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과 같은 리더십 관련서와 <주식투자 이렇게 해라!>와 같은 재테크 비결을 다룬 책과 더불어 수필류와 소설류, 아동도서들이 고객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여행을 하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오! 요즘에는 이런 책들이 나와 있구나!’

나는 제목을 죽 살피며, 관심이 가는 것은 펼쳐보기도 하고,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은 것들은 한두 권씩 사기도 한다. 책값은 절반가격으로 할인해서 대개 5천 원에서 만 원 정도이므로 그다지 부담이 없다.

이렇게 하나둘 사들인 책들이 요즘 내 서가에 꽤 많이 꽂혀 있다. 책을 살 때는 ‘집에 가서 읽어야지!’하는 마음인데, 막상 집에 가서는 다른 데 정신이 팔려 그냥 모셔두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그 책들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저것을 읽어야지!’하고 전의(?)를 불태우게 된다. 당장 읽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존재가 독서의욕을 부추기는 구실을 하는 셈이다.

이러한 휴게소의 도서판매대를 보며 우리나라의 독서문화도 이제 꽤 정착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휴게소에 책을 갖다 놓은 것은 그만큼 책이 팔리기 때문이 아닌가. 그리고 책이 팔린다는 것은 어느 정도 독서인구가 존재한다는 뜻이 아닌가.

예전에 내가 섬 지역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배를 타고 섬을 오가는데, 연락선에 선상문고가 운영되고 있었다. 군청에서 선실에 서가를 설치하고 승객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책을 비치해 놓은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참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군청의 수준 높은 행정에 박수를 보낸 바 있다. 배 안에서 책을 읽으면 지루함도 잊고 공부도 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것이다. 평소에 독서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배 안에서 무료하다 보면 가까이에 있는 책으로 자연히 손이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단 책을 펼치면 뭔가 한 가지라도 소득이 있게 마련이니 그런 기회를 통해 책과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가 있는 것이다. 선실에 드러누워 잠을 자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개 책을 베개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본디 용도는 그게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책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면 선상문고는 충분히 효용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는 말이 있듯이 책도 일단 가까이 있어야 더 자주 읽게 된다.

책이 많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책 읽기에 능숙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독서 활성화를 위해서는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책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중요하다. 학교도서관도 이런 까닭에 접근성을 최우선의 조건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저녁에 시내에 나갔다가 본 일이다. 커피전문점 앞을 지나치는데, 가게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내부의 모습이 그대로 들여다보였다.

그런데 중앙 벽에 너른 책장이 두 개나 맞붙어 있고, 거기에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요즘 생소한 외국이름을 가진 커피가게들이 수없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렇게 책으로 장식한 커피가게도 있구나 싶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평소에 나는 커피가게에 별로 가는 일이 없어 과문한 편이지만, 대개 찻집에는 잘 생긴 외국 배우나 멋진 풍경사진으로 벽을 장식하지 않는가. 책이 꽂혀 있는 커피가게를 보니, 이제 우리나라도 점차 독서풍토가 확산되고 있구나 싶어 적이 반가웠다.

그리고 문득 이런 충동이 일었다. 언제 나도 여기 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책 좀 읽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