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소중한 신의 선물
참으로 소중한 신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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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1.0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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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천 해남동초 교사
   
 
▲ 김석천 해남동초 교사
 
참으로 소중한 신의 선물

시간이 살같이 흘렀다. 일 년을 넷으로 쪼개면 4계절이요, 또 쪼개면 365일, 시간으로는 8760시간 한 해가 넘어갈 때에는 통째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어릴 적 굴리고 놀았던 큰 굴렁쇠가 한 바퀴 구르는 것처럼 한 해는 그렇게 빨리 굴러가 버리곤 한다.

철이 들면서부터는 거대한 굴렁쇠처럼 무상(無常)히 흘러가는 시간을 가슴으로 느끼며 잠시라도 잡아놓을 수도 돌려놓을 수도 없음을 아쉬워했다. 올해도 또 통째로 저만치 굴러가버린 지난해를 바라보며 나의 영혼은 애닲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은데........이렇게 해 그림자가 일 년에 한번 제자리에 올 때면 또 한 해는 저만치 멀어져 가고 굴렁쇠처럼 굴러가 버리는 시간에 묻혀 인생은 언젠가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것. 2012년도 마치 어제처럼 보내고 말았다.

영글지 못한 가슴은 릴케의 ‘가을날’처럼 이틀만 더 남국의 따뜻한 날을 기원하고 싶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중략) 이틀만 더 남국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넣어주십시오.

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지도자이자 민족적 영웅이었던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며 짧은 시간 앞에서 인생을 지혜롭게 채우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누가 뭐래도 인간은 시간 앞에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이다. 고대 그리이스인들은 시간의 개념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해서 생각했다. 크로노스의 시간이란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면서 해가 뜨고 지며 흘러가는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시간, 양적이며 연대기적 시간을 말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다. 가는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시간 개념은 크로노스이다.

고려시대 사람 우탁의 ‘탄로가( 嘆老歌)’는 크로노스의 시간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인생의 무력함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한손에는 막대를 잡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서 늙어가는 것을 가시(가시덤불)로 막고 오는 백발은 막대기로 치려고 하였더니 어느새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반면 카이로스의 시간이란 주관적이며 질적인 시간 개념이다.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특별히 의미있는 시간들을 말한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1849년, 28세에 사회주의 혁명 단체에 가입했다는 죄로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영하 50도가 넘는 추운 겨울날 그는 형장으로 끌려가 기둥에 묶였다. 그에게는 최후의 5분밖에 남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남은 5분을 어떻게 쓸까 고민했다. 2분은 형장에 같이 끌려온 사람들에게 한 마디씩 하는데 쓰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정리하는데 2분, 그리고 1분은 하늘과 땅, 산과 들판을 둘러보는 데 쓰자고 마음먹었다. (생략)

기다려 주지 않은 크로노스 앞에서 카이로스란, 물론 극단적인 비유지만, 마지막 5분을 정리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말한다.

이제 2013년이라는 크로노스의 시간 앞에 우리 모두가 서 있다. 시간은 예전처럼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며 생각보다 훨씬 짧을 것이다. 마치 어릴 적 보리밭 사이를 헤집으며 재미있게 굴리고 놀았던 굴렁쇠가 돌고 돌면 금방 한나절이 지나고 어머니의 ‘밥 먹어라!’ 하는 소리가 들리면 굴렁쇠 굴리기는 끝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은 신만이 아는 비밀이다.

그 끝이 어디인지, 나를 지나친 시간이 어디만큼 갔는지 아는 이가 없다. 지금도 나의 시간은 모래시계처럼 자잘하게 쪼개져 나가고 있다.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찰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2012년 마지막 날, 어둠이 걷히기 전 100분의 일초단위로 넘어가는 디지털시계를 한참이나 바라다보았다. 시간이 엄청난 속도로 쪼개져 먼지처럼 흩어졌다. 생명의 시간들이 소진되어 가는 것을 보며 ‘시간은 생명이다.’는 생각을 했다.

크로노스는 공평하지만 카이로스는 불공평하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촌음을 아끼며 사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참으로 소중한 신의 선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