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양심의 송가, 뮤지컬 레미제라블
자비와 양심의 송가, 뮤지컬 레미제라블
  • 데일리모닝
  • kuh3388@hanmail.net
  • 승인 2013.04.08 14: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병호 전남도교육청 무지개학교담당 장학관
   
 
▲ 장병호 전남도교육청 장학관
 

‘저 노래들에 일일이 곡을 붙이느라고 작곡가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배우들이 저리 노래를 부르기까지 연습을 얼마나 했을까?’

지난겨울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을 보며 한 생각이다.

극중 대사가 모두 노래로 이루어지므로 뮤지컬 영화는 일반 영화보다 훨씬 만들기가 어렵겠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뮤지컬 배우는 연기만 잘해서는 안 되고, 노래 솜씨도 일류 가수 뺨치는 수준이 되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하나를 알면 둘도 알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일까. 영화 ‘레미제라블’을 본 것을 계기로 영국 뮤지컬 공연 디브이디(DVD)도 감상하고, 이어서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뮤지컬까지 관람하게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의 말로 ‘필이 꽂혔다’고나 할까.

영국 오리지널 공연 실황을 보니, 영화 속의 곡들이 뮤지컬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뮤지컬이 먼저 만들어졌고, 그 곡들을 고스란히 옮겨다가 영화를 만든 것이다. 순서대로 하자면 나는 뮤지컬을 먼저 보고 영화를 나중에 봤어야 했다.

그러나 어쨌건 영화에서 들었던 노래를 디브이디를 통해 다시 듣게 되니 이해는 훨씬 잘되었다. 특히 불행의 나락에 떨어진 판틴이 청춘 시절을 회고하는 이 눈물겨웠다.

장발장과 그 일행의 코러스 와 앙졸라가 이끄는 시위대의 노래 도 인상 깊었다. 사랑을 빼앗긴 에포닌의 절규 과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위한 주인공의 간절한 기도 또한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내친 김에 우리나라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았는데, 이것 역시 영국의 오리지널 곡을 우리말로 옮겨 부르는 것이었다. 한국 배우들의 열창 또한 대단했고, 원작의 감동을 충분히 살리고 있었다. 한 작품을 세 가지 유형으로 보니, 출연 배우들의 특성이 서로 비교되고, 노래가 더욱 감칠맛이 났다.

‘레미제라블’의 주된 정조는 비장미이다. 제목이 뜻하는 대로 등장인물 대부분이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이다. 굶주림 때문에 빵을 훔쳐 19년간 옥살이를 한 장발장이 그렇고, 딸의 양육비를 벌기 위하여 거리의 여자로 전락한 판틴이 그러하며, 5.18 광주항쟁을 연상시키며 자유를 외치다 쓰러지는 젊은이들 또한 같은 처지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짝사랑의 비련에 흐느끼는 에포닌 또한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레미제라블’의 감동 요인은 무엇일까? 나는 자비와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은촛대까지 주면서 장발장을 개과천선시키는 미리엘 주교와 자기 공장 직공이었던 비천한 여인의 딸을 거두어 기르는 주인공 장발장의 헌신적 모습은 단순히 ‘사랑’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숭고함이 있다. 나는 그것을 ‘자비’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그러한 주인공의 행위는 평생 그를 괴롭혔던 자베르를 죽음에서 구해줄 때 절정을 이룬다.

특히 감동스러운 것은 장발장이 누군가 자기를 닮은 사람이 대신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고뇌하는 부분이다. 시장이면서 공장 사장인 그는 자기 정체가 밝혀지면 그동안 애써 쌓은 명예와 지위를 잃게 된다. 그렇지만 모른 체하고 있자니 마음이 괴롭다. “입을 열면 나는 범인, 입 다물면 나는 죄인(If I speak, I am condemned. If I stay silent, I am damned.)”이라는 독백에 그의 갈등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는 끝내 명예와 지위를 버리는 쪽을 선택한다. 양심상 애꿎은 사람이 자기 대신 벌을 받는 것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자신을 어찌 다시 볼 수 있을까?(How can I ever face myself again?)”하고 노래하듯이, 차마 자기 자신은 속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장면이야말로 작가 빅토르 위고의 휴머니즘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장발장'이라는 제목으로 '레미제라블'을 처음 만났다. 그 뒤로 영어공부를 한답시고 영문판으로도 접했지만 줄거리만 간추린 것이었다. 뮤지컬을 보고나니, 이제는 원작소설을 제대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훌륭한 예술작품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킨다. 위대한 문학작품은 한 시대에 그치지 않고 시공을 초월하여 독자에게 감동과 교훈을 선사한다. 이게 바로 고전의 힘이 아니겠는가! 1862년에 출간된 '레미제라블'이 15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것을 보면 그 위대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