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학교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특별기고>학교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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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1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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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교육지원청 오인성 교육장

▲ 오인성 나주교육장
청소년이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면 사회의 어두운 곳으로 몰리기 쉽습니다. 생활하기 위해 또는 용돈 마련을 위해 비행이나 범죄의 유혹에 말려들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일탈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고 염려스럽습니다. 들여다보면, 이 문제는 학생의 성장 환경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성장기에 가정과 학교로부터 적절한 애정과 보살핌을 받지 못해 심신의 불균형 상태가 심화되면 학교 밖으로 내몰리는 것입니다. 2012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초중고생 6만 8200명, 광주 전남에서 3900여명이 학업을 중단하고 학교를 떠났습니다.

떠난 학생의 절반은 학교 부적응이 이유였습니다. 결국 머리만 있고 가슴이 존재하지 않는 차가운 학교가 소외된 학생을 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반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주의 경우, 학생 상당수가 경제적 지원이 절실한 환경에 놓여 있고 일부는 지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학력 또는 가정환경 면에서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합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교육복지 851명, 결식지원 46명, 복지시설 수급자가 39명이며 다문화가정 427명, 정서행동특성 관심군 113명, 특수교육 109명, Wee센터 상담 250명, 기초학력 미달 17명 등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학생은 1852명입니다.

나주지역 유치원, 초·중학생 6531명의 28.4%가 관심대상군인 것입니다. 다른 시군도 형편이 비슷하리라 짐작됩니다. 이 자료는 그저 그렇게라도 아직까지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즉 잠재적 중도 탈락 가능 학생에 주목하여 특별한 조처가 필요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물론 지역마다 교육적 취약 학생을 위한 통합지원망이 구축되어 있긴 합니다. 저소득층 학생에게 교육 기회를 보장하고 기본 생활을 지원하는 교육복지우선사업이 있고, 학교, 교육청, 지역사회가 운영하는 다문화교육, Wee센터, 특수교육지원센터, 학습클리닉센터 등이 일정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튼튼한 마음을 갖도록 관리하는 정신건강증진센터가 운영되며 아동학대, 학교폭력 등의 위기 상황에 대비해 다양한 비정부기구와 사회복지기관 등이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그러나 사회안전망만으로 교육적 취약 학생을 건강하고 바르게 키워내기는 어렵습니다.

제도와 더불어 온기 있는 교육환경이 필요합니다. 교직원이 나서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나를 관심 있게 지켜보신다 또는 급식실 조리사 선생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고 느끼는 학생은 더 밝고 안정적으로 학교생활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필요한 만큼 주는 교육, 이것이 공평한 교육입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은 보통 이상 특히 상위 몇 퍼센트 학생에게 치우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가려졌던 학생을 조명하고 이제라도 이들이 중도 탈락하는 일이 없도록 진정으로 보듬고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현실의 교육 관행을 반성적으로 돌아본 것입니다.

소외 학생 또는 자칫 소외될 수 있는 학생을 잘 보살피자는 것은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 촉발된 요구이지만, 교육의 본질 즉 한 인간의 바른 성장을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자각입니다.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보면 중도 탈락을 예방하는 학교교육은, 예견되는 사회적 문제를 줄여주고 성숙된 민주 시민을 양성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입장에서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외된 학생이 없는 학교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빌어 한 가지 제안을 해봅니다.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학생을 대상으로 담임뿐 아니라 교장 교감 선생님을 비롯해 소속 교직원 모두가 나서서 결연을 맺고 사랑을 나누자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결연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의도적으로 묶어, 어른이 먼저 다가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학생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의 학교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낼까에 관한 고민은 온전히 학교 몫입니다. 학교마다 환경이 다르고 학생의 여건이나 요구가 그 수만큼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떠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든, 교직원들이 보편적으로 지닌 훈계의 본능은 꾹 눌러줘야 합니다.

학생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눈을 맞추며 환하게 웃는 태도가 공통 덕목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훈계하지 않으면서 자기 말에 공감하고 칭찬해 주는 사람이 지구상에, 내 곁에 있다는 느낌이 쌓이면 가슴 깊은 곳에 똬리 튼 외로움은 엷어질 것입니다.

교직원과 학생 간 사랑의 결연은 자신의 학교를 소중하게 여기는 계기가 되고, 그 사랑을 경험한 학생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으로 자리할 힘을 지니게 됩니다.

아픔이 있고 사랑에 허기진 학생을 감싸고 보듬어 바른 성장을 이끄는 것, 그 일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학교야말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머리뿐만 아니라 같은 무게로 가슴까지 있는 학교를 만들어, 선생님을 밀어내거나 학교를 떠나려는 학생을 어미 닭이 병아리 품듯 안아주어야 합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의미를 학교교육의 눈으로 새겨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름 불리기를 원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관계는 서로 간의 관심을 끈으로 합니다. 무의미했던 존재가 관심이라는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 있는 존재로 변하는 것,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입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도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학교가 의미 있는 곳이 되게 하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학교에서 따뜻하게 그의 이름을 불러 줄 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봄입니다. 이 시절의 볕살과 바람은 그 따뜻함으로 매화 목련 산수유 벚나무에 꽃을 얹고, 유채 달래 민들레 제비꽃을 땅에 앉혀 꽃밭천지를 만듭니다. 가슴 따뜻한 학교의 품에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롯한 꽃으로 피어나, 새 학기 교정이 꽃동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외된 학생이 없는 학교, 모두가 행복한 학교의 밑받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