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께 “제가 무슨 당이지요?”라고 여쭤보면 바로 “경로당이요”라는 대답과 함께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신다. 그 동안 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고 경로당입니다”라고 늘 말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제가 경로당 청년부장입니다. 그런 자세로 어르신들을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취임 첫 해 늦가을 난향동 국회단지경로당을 방문했을 때 어르신들이 이불을 둘러쓰고 있기에 손을 넣어보니 온기가 별로 없었다. 집이 낡아서 보일러 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예산도 남아 있지 않아 내년 예산으로 수리할 수밖에 없다는 관계부서의 보고. 겨울은 코앞인데 어떻게 하나? 당장 예비비를 써서 경로당 6곳의 난방 공사를 실시했다. 구청장이 직접 방문하지 않았다면 이런 문제는 발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해결책도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체 경로당을 직접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보일러나 에어컨을 점검하고, 냉장고와 찬장을 열어보고, 화장실까지 일일이 내 손으로 챙겼다. 그 동안 접수한 경로당 건의사항이 무려 706건. 이 중 법규상 도저히 안 되는 것 46건을 제외하고 물품 지원 275건, 시설개선 195건 등 660건을 처리했다.
아파트경로당은 구청 예산이 편성돼 있지 않아서 독지가나 민간단체, 기업을 연계시키거나 공동주택 지원 사업을 활용하기도 한다.
직접 다녀보니 경로당마다 형편이 천차만별이었다. 보조금 지원을 면적 기준으로 하다 보니 비좁은 곳은 오히려 보조금도 적어지는 불합리가 있었다. 전형적인 행정편의 사례였다. 모든 경로당을 몇 가지 기준을 적용해 4등급으로 분류, 열악한 곳의 지원을 늘리는 식으로 차등 지원했다.
예를 들면 임대아파트는 지원 등급을 올리는 식. ‘경로당 활성화 종합계획’을 세워 시설현대화와 운영개선에 적극 나섰다. 그 동안 경로당 12개를 신설하고 6개를 리모델링 또는 증·개축했다.
단순 쉼터나 중식 장소로만 여겨오던 경로당을 어르신들의 문화·복지·일자리 공간으로 바꿨다. 경로문화대학 운영으로 평생학습을 지원하고, 특히 ‘세종글방’이란 이름의 한글 교육을 실시했다. 낙성대동 백설경로당에서 운영하는 세종글방에 가보니 게시판에 92세 할머니가 연필로 써놓은 “태어나서 92년 만에 처음으로 연필을 잡아봅니다”라는 글이 눈물겨웠다.
한의사의 침 시술과 에어로빅, 질환예방교육 등 건강교실, 추억의 영화관, 자원봉사와 연계한 안마·미용·수지침·청소 등 사업을 다양화했다.
신사경로당 옥상에 설치한 친환경 수경재배 같은 수익사업, 어린이집을 방문해 그림책을 읽어주는 ‘머리맡 동화 구연’ 사업, 잔재 쓰레기 처리 사업은 노인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있다. 요즘은 노래교실을 운영하는 경로당도 있다. 우연히 때가 맞아 서투른 노래라도 한 곡조 선사해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물질적인 면보다 어르신을 존경하는 풍토 조성이 더 중요하다. 과장해서 말하면, 청소년들은 현재의 대한민국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으로 생각할 뿐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경험을 말하면 잔소리로 치부하며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늘 젊은이들이 누리는 풍요는 어르신들의 헌신과 희생 덕택이라는 사실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확실하게 가르침으로써 어르신을 존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제 효도는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가 국가·사회의 일이다. 고령화는 가속화되는데 노인 빈곤율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노인 문제는 젊은이들의 미래 문제이다. 바로 나 자신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