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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름이 살 안 된다박완규 괜찮은 사람들 대표
홍갑의 기자  |  kuh33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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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7  09: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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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규 괜찮은 사람들 대표
[데일리모닝] 재작년 오늘, 서울 광화문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헌법재판소를 거쳐 청와대가 보이는 곳까지 아내와 함께 구호를 외치며 걸었다. 걸으면서 아내가 이 작은 촛불이 모여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지금껏 살면서 삶의 지혜가 있다면 그중 절반은 어머니께 배운 것이다. 못 먹고 못 살았기 때문이었을까, 어린 시절에 다래끼가 자주 났다. 눈시울이 빨갛게 붓고 곪으면 이게 여간 고약하지 않다.

열이 나고 눈도 침침해진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친구 놈들이 놀리는 바람에 바깥출입을 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처음 며칠 동안은 말이 없다.

그러다 어느 날 “낯바닥 칼칼히 씻고 오니라”고 한다. 드디어 때가 된 듯싶다. 어린 내가 징징대고 싫다고 하면 “오늘 저녁밥 없다.”고 짧게 말하면 나는 얼굴을 씻고서 어머니 허벅지에 누울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단호하다. 곪은 대로 곪은 부위를 단 번에 눌러 고름을 짜낸 뒤 피가 나올 때까지 한 번 더 꾸욱 짜낸다. 죽는다고 소리를 쳐도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처치를 하고 제게 꼭 이 말씀을 들려 주셨다.

“고름이 살 안 된다.” 그날 저녁 밥상에 앉으면 어머니는 언제나 당신 그릇에서 보리밥을 한 술을 푹 퍼서 내 밥그릇에 덜어 주셨다.

촛불집회 2주년이다. 촛불의 힘으로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고, 그 정부에 촛불시민은 적폐청산을 명령했다. 오랫동안 쌓여 온 생활쓰레기들을 깨끗이 치우고, 그 위에 나라다운 나라를 새로이 건설하라는 역사적인 책무를 맡겼다. 새로운 정부는 그 동안 열정적으로 이 일을 추진해 왔고 성과 또한 눈부셨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사회적 상황은 그렇게 녹녹치 않다. 적폐청산을 하고자 했지만 적폐의 반발 또한 만만치가 않다. 경제가 조금 더디게 가고 있다. 그러자 처음에는 숨죽이던 자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세력화의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급기야 촛불정신 자체를 훼손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요즘은,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했던 반민특위가 어떻게 해체되었는지 궁금해져 역사책을 다시 펼쳐 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옛것이 무너지는 데 고통이 없을 리 없으며,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답답하지 않을 리 없다.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자꾸 과거 회귀적 모습을 보이는 것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면서 우리는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를 떠올린다. “옛것은 죽어 가는데 새것은 아직 자라나지 않은 상태”가 위기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 현 상황은 분명히 위기이다. 하지만 위기는 극복하라고 주어진 기회이다. 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당장 눈앞에 잘 보이지 않는 성과에 매이지 말고 우직하게 앞만 보며 나아가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남북관계가 해빙무드이다. 우리 앞에 전쟁이 사라지려 한다. 이제부터 경제이다. 이것만 해도 지금 현 정부가 큰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북과 다시 싸우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식들 군대나 보내고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촛불시민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했지 뒤로 돌아서라고 하지 않았다. 과거를 청산하지 않은 채 미래를 논의하는 것은 무지이거나 기만이다.

유신(維新)이란 말이 잘못 사용되는 바람에 입에 올리기 거북스럽지만,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한다’는 유신의 본래적 의미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만해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유신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손이요.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다.”라고 갈파했다.

참담한 시대에 맞서 ‘파괴’를 통해 시대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만해의 원력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적폐청산을 위해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고름이 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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