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투사회보 발행 장소 사라질 ‘위기’
5·18민주화운동 투사회보 발행 장소 사라질 ‘위기’
  • 홍갑의
  • kuh3388@hanmail.net
  • 승인 2019.04.1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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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야학’ 상징 광천시민아파트 재개발로 철거될 상황
5·18민주화운동 당시 투사회보를 발행한 들불야학이 활동지인 광천시민아파트가 재개발로 기억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투사회보를 발행한 들불야학이 활동지인 광천시민아파트가 재개발로 기억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데일리모닝] 홍갑의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투사회보를 발행한 들불야학이 활동지인 광천시민아파트가 재개발로 기억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19일 광주 서구청에 따르면 광천동 주택재개발 계획에 따라 들불야학이 이뤄졌던 광천시민아파트가 조만간 철거될 상황이다.

하지만 서대석 서구청장이 최근 민주화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인 시민아파트의 보존가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지역 시민단체도 발 벗고 나서면서 보존될지 여부에 관심이다.

광천시민아파트는 광주·전남 최초의 노동야학인 들불야학(1978년 7월~1981년 7월)의 근거지였다. 80년 5월 도청에서 최후의 항전을 지휘한 윤상원 열사가 박기순 열사가 주도한 들불야학에 참여하면서 1978년 이곳에 입주했다.

들불야학은 시민아파트 바로 옆 광천동 성당 교리실에서 출발해 1979년 1월 다동 2층 방으로 학당을 옮겼다. 1981년까지 3년 동안 광주시민들에게 민주주의를 교육시키기도 했다.

트ᅟᅳᆨ히, 윤상원·박용준(1956~1980) 열사 등이 5·18 학살을 고발한 최초의 민중언론 ‘투사회보’를 9호까지 제작한 곳도 시민아파트 들불야학 학당이었다.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다가 옥중단식 뒤 사망한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1953~1982) 열사와 5·18 시민군 기획실장 김영철(1948~1998) 열사도 들불야학 강학들이었다.

들불야학은 광주지역 최초의 노동야학으로 1970년대 말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주민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5·18유적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소식에 지역 시민단체들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재 광천동성당이 들불야학의 유일한 사적지로 등록됐으며, 광천시민아파트의 경우 5·18사적지로 등록되지 않았다.

실제로 수많은 열사들이 거주하며 가르쳤던 공간인 시민아파트가 보존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는 여론이다.

들불열사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문화수도 자평하고 있지만 광주의 문화는 오월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며 오월정신의 시작은 들불야학이다”며 “그런 공간을 지키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에 부끄러운 일이 될 것”라고 말했다.

서구청은 광주시와 함께 5·18사적지 지정과 시민아파트 보존방법을 논의 중이다.

서구 관계자는 “시민아파트 보존 근거와 방안을 시와 강구하고 있다”면서 “최근 정종제 행정부시장 주재로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청장과 광주시에서 발 벗고 나선 만큼 조만간 방안이 마련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