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벼슬인가
의사가 벼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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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uh3388@dmorning.kr
  • 승인 2020.09.1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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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일 남도일보 대기자
박준일 남도일보 대기자
박준일 남도일보 대기자

의대생들이 학교로 돌아갈 수순을 밟고 있다. 50여 일 만이다.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해 지난 8월 4일부터 의대생들의 수업과 실습 거부를 시작으로 의사 총파업과 의사 국시 거부, 동맹휴학 돌입 등 의사집단이 투쟁 수위를 높여왔으나 14일 모든 단체 행동의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상황에서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이번 집단행동을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를 보호하겠다는 히포크라스테스의 선서는 없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 가진 존엄성에 대한 자존감과 소명 의식은 실종된 지 오래다.

의대생들이 나름대로 명분과 이유가 있겠지만 가운을 벗고 거리의 투사로 나선 순간부터 이미 대중은 등을 돌렸다. 깃발 들고 머리띠 두르면 정부가 손을 들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중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행동으로 여기고 있었다. 파업 과정에서 의대생 90%가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의 응시를 집단거부했으나 동력은 이미 떨어진 상태다.

의사가 벼슬인가? 벼슬 맞은 것 같다. 대단한 위세다. 환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그 무모함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지난 3월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싸우다 과로로 뇌사 상태에 빠진 의사가 장기기증으로 8명에게 새 생명을 주었다는 중국발 감동은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었다. 사지로 내 모는 그런 희생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의사들은 의술로 병든 사람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돈벌이의 한 수단에 불과한 직업임을 자인한 것처럼 비추어진다.

SNS상에는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고시 재접수 구제를 둘러싼 비난이 빗발쳤다. “시험 신청 기간 안에 시험접수를 하지 않았다면 시험을 볼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닌가요. 전교 1등이어서 의대를 갔다는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죠”라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정부는 의대생들에게 추가 시험 기회를 줄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당사자들이 자유의지로 국가시험을 거부한 상황에서 추가 시험을 검토할 필요성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의사들의 불법적 집단행동에 대해 의사면허 취소와 법적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

환자를 볼모로 삼아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의사는 의사가 아니다. 어떤 국가 자격시험이 특정 이익집단의 요구에 따라 시험 기간을 연장해 준 경우가 있었던가. 스스로 뭔가 특별하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정부는 당초 1일로 예정됐던 시험을 8일로 연기하고 재응시 신청을 받았지만 14%만 접수했고 시험 첫날인 8일 단 6명만 시험에 응시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의사협회에서는 또 재접수 구제책을 요구하는 것 같다. 구제는 본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불가피한 이유로 시험을 치르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번 경우는 다르다. 전공의들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접수를 안 해 놓고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은 억지다. 두 번의 기회를 주었지만 거부한 것은 그들이다.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한번 연기해 준 것도 특혜다. 정부로서도 제도의 일관성과 형평성을 유지해야 하는 측면에서 곤란하다. 대중의 정서도 차갑다.

국회 보건복지위 한 여당 의원도 “의대생들도 성인이므로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시할 수는 있지만 그 행동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집단행동에 휩쓸리지 않고 동료 의사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팬데믹의 최전선에서 끝까지 환자 곁을 지킨 의로운 의사들도 있다. 그분들까지 싸잡아서 비난한 것은 절대 아니다.

공공 의대 설립은 지난 십여 년에 걸쳐서 오랫동안 준비되고 논의되고 결정한 정책이다.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도 추진됐었고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법안 통과 막바지에서 일부 야당 의원의 반대로 무산됐다.

의료업계 단체행동의 빌미가 된 공공 의대 설립추진 방안은 의대 정원을 오는 2022학년도부터 매년 400명씩, 10년간 총 4천 명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3천 명은 지방의 의료격차를 해소할 ‘지역 의사’로, 1천 명은 역학 조사관, 중증외상 등 특수전문 분야 인력으로 육성한다. 의사 수를 늘려 지역 의료 불균형과 필수 의료분야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전남도의 경우 고령 인구 비율 22.6%, 장애인 비율 7.6%로 의료 취약계층 비율이 전국에서 제일 높다. 전남지역 의과대학 설립은 도민들의 지난 30여 년간 숙원사업이다. 이번 기회에 경증환자와 거동 불편자, 도서벽지 주민을 위한 원격진료 제도도입 등 의료계를 개혁하고 반드시 경쟁시켜야 한다. 요즘도 대형병원에서 진료받으려면 예약을 하고 가더라도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의사와 마주하는 시간은 2∼3분이다.

의사협회도 의사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 있다면 두둔하고 옹호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시키고 바른길로 선도해야 한다. 전교 1등을 거들먹거릴 것이 아니라 이 가을에 익어가는 곡식이 왜 고개를 숙이는 그 이치를 아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