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소복하게 내린 아침
첫눈이 소복하게 내린 아침
  • 홍갑의
  • kuh3388@hanmail.net
  • 승인 2021.01.13 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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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순 장흥장평중학교 교장
김인순 장흥장평중학교 교장
김인순 장흥장평중학교 교장

[데일리모닝] 지난 8일 전교생 27명, 작은 학교에 첫눈이 내렸다. 어른들은 허둥지둥 당황했다.

“택시 통학 기사님이 눈 때문에 운행이 어렵답니다. 장평 지역이 눈이 많이 와서 위험합니다. 빙판길이 위험하네요. 조금 늦게 오더라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담임 선생님 학생들에게 안내하십시오...”

교직원 비상 연락방에서 교사들은 오전 6시부터 난리가 났다. 학교에 도착하니 학생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와 있다. 출퇴근 선생님들 중 늦는 분이 생겼다. 비상 시간표를 짜면서 1교시에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을 하는 시간으로 하면 어떻게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애들아, 우리 눈사람 만들까?”, “예!, 아니오. 너무 추워요.” 남학생들은 좋다고 펄쩍 펄쩍 뛰고, 여학생들은 내일 축제 준비 바쁘고 춥다며 남학생들에게 눈치를 줬다.

“그래 이야기 나누고 결정해서 와라.” 5분도 안되어 춥고, 바빠서 안된다던 여학생 00이가 뛰어왔다. “그런데 장갑 좀 빌려주면 안되나요?”, “왜? 눈사람 만들기 안 한다며?”, “아니, 그냥 눈사람 만들기로 했어요.”

그래서 1교시 눈싸움이 시작됐다. 학교에 비치된 작업용 빨간 목장갑을 전교생에게 나누어 주었다. 모두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갔다. 눈이 잘 뭉쳐지지 않아 눈사람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눈을 한 웅큼씩 쥐어 뿌리는 눈싸움을 했다.

깔깔깔 웃으며 뛰어다니는 중에 00이와 00이는 슬쩍 빠져나와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나뭇가지로 팔을 만들고, 나뭇잎으로 입술을 만들고 있었다.

한 시간을 뛰어놀던 아이들은 손을 호호 불며 왁자지껄 즐겁게 교실로 돌아갔다. 오늘 아이들은 이 신나는 여운으로 축제 준비를 즐겁게 할 것이다.

녀석들을 보니 눈이 와도 아이들 눈싸움 한번 못 시켰던 교직 저편 기억들이 떠오른다. 사고가 날까봐, 아이들이 교실을 엉망으로 만들까봐, 아이들이 흥분해서 수업이 이어지지 않을까봐 터무니없는 걱정으로 아이들의 추억을 만들어 주지 못했던게 뒤늦게 마음 아프다.

장흥장평중학생이 만든 눈사람
장흥장평중학생이 만든 눈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