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예찬(禮讚)
벌초 예찬(禮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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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uh3388@dmorning.kr
  • 승인 2024.09.0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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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장흥문화원장(전 전라남도교육위 부의장)
김명환 전 전라남도교육위원회 부의장
김명환 전 전라남도교육위원회 부의장

[데일리모닝] 김명환 장흥문화원장(전 전라남도교육위 부의장)=이 골짝 저 골짝에서 벌초하는 기계소리가 흥겹다. 벌초의 계절이 돌아와 올해도 작년처럼 벌초 소리가 들리니 좋아하는 트로트라도 들은 듯 묘한 행복감에 젖는다.

벌초로 깨끗이 단장된 조상님들의 유택을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아직은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 것 같기에 안도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벌초는 묘에 자란 잡초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말한다. 고려말 유교가 보급되면서 자연스럽게 벌초하는 관습이 생겨난 것인데, 심지어 성리학이 번창했던 조선시대에는 조상님들의 묘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를 불효로 인식하기도 했다.

벌초는 보통 1년에 두 차례 하는데 봄에는 한식 때, 가을에는 추석 때 한다. 고향에 남아있는 문중사람들이 벌초를 책임지고 감사의 뜻에서 후손들이 벌초 대가를 봉사료 수준으로 주는 형태가 많았는데,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벌초 대행업이 늘어만 가고 있다.

전에는 추석 벌초로 인해 가족 간에 적잖은 갈등도 있었다. 고향에서 사는 아들이 벌초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 강요하다시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 고향이나 지키며 벌초나 해야 하는가 자책하고 마치 벌초가 자신의 못남을 확인받는 연례행사로 여겨지기도 했다.

간혹 큰 집, 작은 집 간에 작은 신경전이 일기도 했다. 작년에는 큰 집에서 했으니 올해는 작은 집에서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큰 집도 있고, 조상 묘소는 큰 집이 책임이니 작은 집은 어쩌다 한 번씩 도와주기만 해야 하는 데 잘못하면 버릇이 된다고 생각하는 작은 집도 있었다.

어떤 문중에서는 종손이 선대 묘소 벌초행사를 기획해 특정한 날에 모이도록 해 자손들의 규율을 잡을 기회로 악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비용을 들여 벌초를 하고 있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갈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왜 묘의 풀을 베는 일을 벌초라고 했을까. 예초(刈草)라고 할 수도 있고 제초(除草)라고 할 수도 있을 터인데 왜 칠 벌(伐)자를 써서 벌초라고 했을까.

아마도 조상님의 유택에 자라나는 풀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그를 물리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일이기에 그렇게 표현 한 것은 아닐까.

그것이 아니라면 풀을 베어주지 않으면 임자 없는 묘로 간주하고 혹여 묘에 해코지를 할까봐 그런 사람들을 쳐낸다는 뜻을 포함해 벌초라고 한 것을 아닐까.

벌초 시에는 벌초 자체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예초기 사고를 비롯하여 벌이나 독사. 진드기에 물리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려야한다.

심지어는 벌초 시 필요해 소지하고 간 도구에 찔리는 안전사고도 발생해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제주도에서는 2000년대 까지 음력 8월 1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해 학생들이 벌초에 참여하도록 하는 벌초방학까지 있었다.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남이 모르지만 벌초는 안하면 금방 남의 눈에 띈다며 벌초를 강조하기도 했다.

중부지방에서는 벌초를 금초라고도 하는데 금화벌초(禁火伐草)에서 나온 말로 한식 즈음에 불을 조심하고 풀을 베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나왔다.

경기도에서는 음력 8월에 벌초하는 사람은 자식으로도 안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때에 벌초해야 됨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가을 벌초는 처서에서 시작해 추석 전까지 마무리하곤 한다.

벌초에 얽힌 속담도 있다. 정성을 들이지 아니하고 건성으로 함을 비유적으로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한다고 한다.

주되는 것은 밀려나가고 부차적인 것이 판을 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벌초자리는 좁아지고 배코자리는 넓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벌초는 마지못해 하는 탓에 그 구역이 점차 줄어들고 상투를 앉히려고 머리털을 깎아낸 배코자리는 쓸데없이 자꾸 넓어지기만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벌초는 지방마다 집안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오래전부터 우리의 삶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고 이를 이행해 왔다.

그런데 어떤 유택은 벌초가 되지못한 채 추석을 맞는 모습을 가끔씩 보곤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무슨 변고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걱정을 한다.

분명 벌초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그럴 거라 생각한다. 유택에 잡초가 우거지고 잡목이 자라고 흔적이 사라진다면 그것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

나는 해마다 나 자신이 벌초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 들어가는 요즘은 몸이 하루가 다르지만 오래도록 예초기를 짊어지고 조성님 묘소를 벌초하고 싶다.

나를 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한 조상님 유택에 쳐들어온 깡패 나무와 도둑 풀을 정비센터에서 잘 정비한 예초기로 오래도록 해마다 말갛게 토벌하고 싶다. 내고향 장흥산야의 벌초된 유택들이 나에게 환한 미소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