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없음
마을 뒤에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뭣한 동산이 하나 있다. 제법 숲이 우거져 있어 날마다 아침 일찍 복동이를 데리고 즐겨 찾는다. 숲길에 들어서면 하늘이 보일락말락한다. 며칠 전부터는 내가 산길에 들어서면 인사라도 하듯 반갑게 산꿩이 운다. 작년에는 유월 초쯤 산꿩이 우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올해는 산 속에도 계절이 앞당겨졌는지 오월 초에 벌써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산꿩은 이상하게도 내가 숲길에 들어서면 꿩, 꿩 하고 울어댄다. 아침마다 내가 산길을 들어가면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는 것이다. 그것도 딱 한 차례 울고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처음 산꿩 소리를 들었을 때는 올해는 일찍 우는구나 반가운 마음이었는데, 둘쨋날은 내가 산에 들어서는 것과 거의 동시에 또 산꿩이 울어 그저 우연의 일치 정도로 생각했다. 그랬는데 셋째날도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이 우연의 일치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내가 산에 들어서기만 하면 산꿩이 가까이서 알은 체를 하는 것이다.
요즘은 산에 갈 때마다 오늘 산꿩이 우는 소리를 못 들으면 어떡하나 할 정도로 나의 뒷동산행은 바로 이 산꿩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 나의 산행은 산꿩 울음소리를 들으려고 가는 것이나 진배없게 된 것이다.
꿩 울음소리는 다른 새들의 소리와는 달리 산 전체를 깨우는 듯하다. 그 소리도 해맑고 크려니와 무슨 뜻이 있는 듯 들린다. 나른한 봄기운에 졸고 있는 산을 깨워, 산에 사는 적송, 아카시, 니키다소나무, 잣나무, 굴참나무, 다른 나무들 그리고 모든 풀들, 새들, 너구리, 다람쥐까지 산의 가족 모두에게 상쾌한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조금은 허스키하고 높은 소리가 생명감이 넘치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나도 뒷동산이 내게 주는 선물인 양 기쁘게 산꿩 소리를 귀에 담는다. 솔직히 집안에 틀어박혀 독서를 하거나 베토벤 음악을 듣는 것보다 숲길에서 산꿩 소리를 듣는 것이 내 영혼을 맑게 해준다고 나는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다. 해종일 산꿩 소리가 내 귀에서 메아리를 치는 기분이라니.
산꿩은 계절에 맞추어 멀리서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 작은 동산에 거처를 마련하고 겨울을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꿩은 좀 극적으로 말하면 이 뒷동산을 지키는 산지기나 다름없는 존재다. 하지만 뒷동산의 꿩에게도 위기가 닥쳐온 듯하다.
중국에서 들여온 청설모란 놈들이 꿩알을 집어먹는 통에 꿩이 번식을 잘 못하고 있다는 것. 아차, 그래서 산꿩이 한 마리만 우는가 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쪽에서 꿩이 울면 저쪽 골짜기에서 응답하는 소리가 들렸었는데.
삭막한 도시에 사는 내가 가까운 산에 가서 산꿩이 우는 소리를 듣고 오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다. 산꿩 우는 소리가 나를 하루종일 더없이 기분 좋게 한다. 뒷동산 숲길에서 돌아오면 온몸에서 푸른 물이 뚝뚝 듣는 듯하다.
뒷동산에서 우는 산꿩 소리에 흘러내린 숲속 푸른 색깔이 내 몸을 적신 모양이다. 자연이 자아내는 초록빛은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는다. 우리 영혼에 색깔이 있다면 단연 이 초록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려나, 꿩이 올봄에 알을 낳아 무사히 새끼를 잘 기르고 내년 봄에도 숲길에서 다시 산꿩이 우는 소리를 듣고 싶다. 이것이 하릴없는 나의 작은 소망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모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