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의 장난
박남기 제5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데일리모닝] 박남기 제5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 설 명절을 앞두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마주할 딸아이의 얼굴, 그리고 한참 재롱이 늘고 있는 손자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렘과 아스라한 회한이 교차한다.
어머니가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신 뒤, 스무 명 가까운 형제 가족들이 모두 모여 왁자지껄하게 웃음꽃을 피우던 고향집의 명절 풍경은 벌써 아스라한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명절 전 미리 펜션을 빌려 어머니를 모시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예년 같으면 형님댁 설날 차례상에 얼굴이라도 비췄겠지만, 올해는 일찌감치 어머니를 뵙고 머나먼 타국 땅에 있는 손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딸 집에 들어서자마자 ‘하라부지!’ 하는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손자가 달려와 환한 미소를 한 아름 안긴다. 10개월 쯤 되어 한국으로 날 찾아왔을 때, 마치 전생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내 품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가슴이 아렸다.
아이가 태어난 날 미국으로 찾아가 3개월간 돌보다가 돌아온 아내가 서운해할 정도였다. 작년 봄 돌잔치 때에도, 지난 여름 2주간의 여행 때도 아이는 심지어 엄마보다도 할아버지를 더 찾았다.
아무도 엄마인 자기를 이기지 못했는데 아빠만 예외라며 딸도 신기해했다. 귀국 후에는 매일같이 화상통화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화면 너머로 들리던 하부지 발음은 이제 제법 또렷한 하라부지가 되었다.
직접 만나보니 아직 두 돌도 채 되지 않은 손자가 그사이 폭풍 성장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조금은 수줍어 하면서도 숫자 세기, 알파벳 맞히기, 동물과 곤충 이름 대기 등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느라 여념이 없다.
낯선 땅에서 자라면서도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한국어를 먼저 배우게 하겠다는 딸아이의 야무진 고집이 아이의 입술 끝에 예쁘게 맺혀 있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어느새 어두워진 골목길로 나가 아이와 세발자전거를 탔다. 이곳 주택가는 주차장이 모두 집 뒤편에 위치해 있다.
주차장 바로 앞은 지나다니는 차가 통과할 수 없는 안전하고 넓은 골목길이어서 아이와 자전거 타며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계속 타고 싶어 해서 골목을 빠져나가 큰길 인도를 따라 한 바퀴 크게 돌아 집의 앞쪽으로 향했다.
미국의 일반 집처럼 담장은 없고 길에서 곧바로 들어갈 수 있는 아담한 문이 설치되어 있다. 지난해에 해보았던 것처럼 밖에서 손을 살짝 집어넣어 잠금장치를 푸니 부드럽게 열렸다.
아이와 함께 작은 마당을 지나 거실 창을 보니 벌써 불이 꺼져 있었다.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조금 이상했다. 거실 출입문을 당겨보니 잠겨있었다.
손자가 “엄마!” 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아이 손을 잡고 나무가 촘촘히 심긴 좁은 정원을 지나 부엌문을 찾았다. 문을 두드렸으나 역시 불도 꺼져 있고, 답도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부엌 옆의 좁은 통로를 지나 주차장 옆 쪽문으로 갔다. 그 문을 열면 주차장 쪽으로 나갈 수 있는데 그 문도 잠겨 있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다시 부엌문으로 돌아가 몇 번을 더 두드렸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커튼이 스르르 걷히더니, 백인 노부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을 빼꼼히 내미는 게 아닌가. 아뿔싸. 집 구조가 비슷해 옆집을 딸 집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연신 "아임 쏘리"를 연발하며 아이 손을 잡고 도망치듯 정원을 빠져나왔다.
평온한 저녁 시간을 보내던 백인 부부는 아마도 도둑이 든 줄 알고 잔뜩 긴장했을 것이다. 커트 사이로 지켜본 나이든 동양남자와 어린아이를 보고 조금은 안심하며 얼굴을 내밀었던 것 같다.
그 집을 나와 한 집을 더 지나치니 비로소 불이 환하게 켜진 딸의 집이 나타났다. 작은 대문을 열고 들어와 거실 문을 당기니 쉽게 열렸다. 한 손으로는 손자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세발 자전거를 들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거실로 들어섰다.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같은 구조의 집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대낮에 보면 집 정면의 장식이 달라 식별이 잘 된다고 했다.
늘 그랬듯이, 아내는 "당신은 도대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라며 핀잔을 준다. 나도 집 밖에서는 괜찮은 남자라는 소리도 제법 듣는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당신의 진면목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일갈한다. 괜히 더 대꾸해 봐야 본전도 못 찾을 것이어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미소로 화답했다.
아내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것이 어디 나뿐이랴.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백악관에서 자기를 무시하는 유일한 두 사람이 부인과 장모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내를 설득할 수 있으면 세상도 설득할 수 있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무사히 귀환했다는 안도감 덕분인지, 아내의 잔소리가 싫지만은 않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대도시 아파트에 사는 딸래미집에 갔던 노인이 산책 후 집을 못 찾아 남의 아파트 문을 두드리며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내가 아파트 단지도 아닌 아름답게 잘 가꿔진 주택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길치 노인네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밤의 요정이 걸어온 장난에 잠시 놀아난 것일 뿐 내가 아직은 그런 노인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첫날 밤을 맞았다.
딸 부부가 둘 다 직장에 다니고 있고, 노부부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 그들과는 두어 번 마주친 정도의 사이란다. 날이 밝으면 한국에서 가져온 빛깔 고운 한과를 들고 옆집 노부부를 찾아가야겠다.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나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들이 길가에서 노는 내 손자를 알아보고 따뜻한 인사를 건네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나도 이렇게 조금은 터덕대며 나이를 먹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