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사상 최대 폭락, 전남 농민 최대 피해
쌀값 사상 최대 폭락, 전남 농민 최대 피해
  • 정상철 기자
  • andnltk11@naver.com
  • 승인 2022.09.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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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포대 16만4,740원, 전년 대비 24.8% 하락
농민이 ‘쌀값 보장’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부착한 트랙터를 몰고서 벼가 서 있는 논을 갈아엎고 있다(사진 : 한국농어민신문 9월 16일자 “이대로는 못살겠다…쌀값 보장하라” 켑쳐)
농민이 ‘쌀값 보장’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부착한 트랙터를 몰고서 벼가 서 있는 논을 갈아엎고 있다(사진 : 한국농어민신문 9월 16일자 “이대로는 못살겠다…쌀값 보장하라” 켑쳐)

[데일리모닝] 정상철 기자= 장흥 들녘에 콤바인이 돌아간다. 논가에 선 정영호 씨의 얼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휑한 표정으로 수확되는 자신의 논을 바라보던 그는 “지난해보다 수확량이 많아도 걱정이 앞서요. 쌀값이 사상 최대로 떨어졌단디 내가 이 꼴을 볼라고 평생 농사졌으까 싶으요”라고 말했다.

쌀값이 급락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폭락이다. 지난해 대비 25∼30%까지 떨어졌다. 26일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올해 산지 햅쌀 평균 가격(80㎏·1포대)은 16만4740원으로 전년 대비 24.8% 하락했다. 지난해 최고가와 비교하면 최대 하락폭은 더욱 떨어져 27.5%에 달한다. 실제로 지난해 10월5일 거래된 최고 가격은 22만7,212원으로 무려 6만2,472원이나 하락했다.

쌀값 폭락의 근본 원인은 정부에 있다. 쌀 재고량이 많아 시장 가격 우려가 있었음에도 2021년산 쌀 시장격리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뒤늦게 2022년에 들어서야 사후적으로 37만t을 시장에서 격리했지만 이미 쌀값 폭락은 시작됐고, 그마저도 최저가 입찰로 매입하면서 되레 폭락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은 “정부가 사후적 시장격리와 소극적 물량 매입, 최저가입찰을 고수하면서 산지 쌀값이 9월 들어 80kg 기준 16만4,740원까지 떨어졌다”며 “특히 농도인 전남의 경우 처리되지 못한 재고쌀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8만9000t이나 남아 있어 전남 농민들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문제는 쌀값 하락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데 있다. 농협엔 재고미가 가득하고, 풍년이 예상되는 올해 수확기 햅쌀 공급 과잉으로 쌀값의 더 큰 폭락이 우려되고 있지만 정부는 먼 산만 보고 있다.

농협은 올해 작황·재배면적을 고려할 때 쌀 생산량을 ‘379만~385만t’으로 전망하고 있다. 소비량 감소 등을 고려할 때 신곡 수요는 ‘346만t’ 내외로 추정된다. 농협은 매월 재고 소진물량을 감안할 경우 올해 10월 말 구곡 재고는 15만~18만t, 2022년산 신곡은 33만~39만t으로 총 50만t 이상의 공급 과잉이 예상된다.

시장 상황을 볼 때 충분한 물량의 즉각적인 쌀 시장격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쌀값은 더욱 폭락할 수밖에 없고,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전가된다. 현재로서 유일한 희망은 쌀 자동시장격리 법제화 및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재개를 골자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남는 쌀의 시장격리 조치를 의무화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미곡의 과잉 생산 등으로 초과생산량이 생산량 또는 예상생산량의 2.5% 이상이 돼 가격이 급락하거나 하락이 예상되는 경우’, ‘미곡의 단경기 또는 수확기 가격이 평년 가격보다 4% 이상 하락하거나 하락이 예상되는 경우’ 쌀을 의무적으로 시장격리한다.

특히 개정안은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미곡의 당해연도 수확기 가격이 최근 3년 수확기 평균 보다 낮은 경우, 생산 농가에 대해 최근 3년 수확기 평균 가격과 당해연도 수확기 가격 차액의 100분의 85를 지원토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이 하루빨리 국회를 통과해 발효되면 농민들에게 작은 숨통을 열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7년에도 쌀값이 폭락했지만 발 빠른 시장격리로 가격 안정을 찾은 사례가 있다. 당시 2017년산 쌀의 작황조사를 근거로 쌀가격이 형성되기 전인 9월28일 시장격리를 결정, 10월~12월 수확기에 공공비축미 가격으로 매입해 쌀값이 차츰 안정됐다.

전남도 관계자는 "2017년에도 수확기를 앞두고 쌀값이 폭락하는 분위기였지만 시장격리로 산지 쌀값이 안정됐던 경험이 있다”며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농민들을 위해 쌀 가격 안정을 위한 시장격리 의무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