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지도자의 역할
세월호와 지도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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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1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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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순천왕운중학교 교장

▲ 장병호 순천왕운중 교장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며 가장 안타까운 대목은 선박 관계자들이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대처를 하지 못한 점이다. 배가 기울기 시작할 때 재빨리 승객들을 선실 밖으로 나오게 해 구명정을 타게 하든지, 바다로 뛰어내리게 했더라면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 침몰해 가는데도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마세요!”라는 안내방송만을 거듭하며 승객들을 계속 선실에 묶어두었다.

처음 배가 기우뚱할 할 때는 균형을 잡아야 하므로 방송 내용이 맞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배가 완전히 기울어 원상회복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즉각 배에서 탈출하도록 지시했어야 마땅한 것이다. 배는 잃더라도 사람은 구해내야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만 반복되었을 뿐, 그 이후에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시가 없었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맨 처음 출동한 해양경찰이 찍은 동영상을 보더라도 배가 기울어 가는 모습만 보일 뿐 밖에 나와 구조를 기다리는 승객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구조 경찰이 오고 있는데도 거의 모두가 선실에 들어앉아 있었다는 이야기다.

사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서 승객들은 독자적인 판단이 어렵다. 그래서 선박 관계자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학생이나 인솔교사나 일반승객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일이다. 아마 승객들 대부분은 안내방송에 따르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라고 믿고, 후속 지시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선장을 비롯한 선박 관계자들이 승객들의 기대를 배반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다년간의 운항 경력을 가진 그들이 배가 균형을 잃은 상황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승객 대피를 우선적으로 서둘렀어야 하지 않았을까.

먼저 선내 방송을 통해 승객들로 하여금 선실에서 빠져나오도록 지시했어야 한다. 그리고 층별로 직원들을 배치하여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지급하면서 출구로 나가도록 안내했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나머지 직원들은 갑판에 나가 구명정을 풀어 내리고, 탈출용 미끄럼틀을 설치하여 선실에서 빠져나온 승객들이 구명정으로 옮겨 타도록 도왔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월호 승조원들은 그러한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승객 대피는커녕 해경으로부터 제일 먼저 구조를 받은 것이 그들이 아닌가. 그들은 비정규직을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희생되지 않고 모두 배에서 빠져나왔다. 승객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직업의식이나 책무감이 있었다면 그럴 수가 있을까.

예전에 영화 ‘타이타닉’에서 조타실에서 키를 붙잡고 배와 운명을 같이하던 선장의 비장한 최후가 떠오른다. 그리고 아비규환 속에서도 탈출할 생각을 접고 찬송가 연주를 계속하던 악사들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1852년에 있었던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호의 사례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630명의 승객을 실은 배가 암초에 부딪쳤을 때, 불행하게도 구명정은 세 척밖에 없었고, 구출 가능 인원은 180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때 선장인 세튼 대령의 조치는 어떠했던가. 그는 병사들을 갑판에 부동자세로 서있게 하고, 부녀자와 아이들에게만 구명정에 오르도록 했다. 결국 버큰헤이드호는 침몰했고, 선장을 포함한 436명은 그대로 수장되었지만 그들의 영웅적인 행위는 역사에 기록되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위기 상황에 처할수록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확한 상황 판단과 더불어 과감한 결단과 신속한 대응이 요구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에 앞서 공익을 우선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와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이 필요하다.

세월호의 선장과 승조원들이 배와 운명을 같이하지는 않았더라도 마지막까지 승객 구출에 최선을 다한 뒤에 구출되었더라면 온 국민의 시선이 그토록 따갑지는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