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 장편소설 정약용 '출간'
정찬주, 장편소설 정약용 '출간'
  • 홍갑의 기자
  • kuh3388@hanmail.net
  • 승인 2018.12.2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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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눈물 회한으로 얼룩진 茶山의 슬픈 노래
실학을 집대성 한 업적에 가려진 내면 이야기

▲ 소설 정약용 책 표지
[데일리모닝] 홍갑의 기자 = 우리가 몰랐던 인간 정약용의 고독 · 눈물 그리고 회한으로 얼룩진 슬픈 노래가 정찬주 작가의 장편소설 ‘소설 정약용’(한결미디어)으로 출간됐다.

소설가 정찬주 작가가 실학자 정약용을 주제로 장편소설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정 작가는 지난 2012년 정약용 탄신 250주년을 맞아 유네스코가 2012년의 기념인물로 다산을 지정한 것에 맞춰 ‘다산의 사랑’을 발표했었다.

2018년 올해는 다산이 강진에서 18년간의 오랜 유배생활에서 벗어난 해배(解配)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찬주 작가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실학을 집대성 한 다산 정약용의 빛과 그림자 중 지금까지 깊게 가려진 그림자 부분에 눈을 맞춰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한국인의 전형적인 정체성을 발현한 인간으로 승화시켰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그의 호에서 보듯 차를 좋아했고 거기엔 또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강진 유배생활 중 지극 정성으로 차를 끓여준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초로의 나이에 홍임으로 불리는 늦둥이 딸을 얻는 기쁨을 맛봤으니 얼마나 행복했을까?

특히 이 소설에서 처음 다룬 다산의 지병과 차에 관한 일화는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정적들로부터 수많은 모함을 받고 끝내 유배를 가게 되면서 몸이 많이 상했던지 후유증으로 반신마비 증상이 와 절망에 빠졌다고 한다.

홍임 모는 정성스레 차를 끓여 병 수발을 하게 됐고 그런 정성이 효험을 발휘하여 차츰 건강을 되찾아 왕성한 저술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정조대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한때 권력의 정점에 서기도 했던 다산은 홍임 모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교만을 버린다.

유배가 풀리자 다산은 홍임 모와 홍임이를 데리고 고향 마재로 갔으나 모녀는 곧 강진 초당으로 돌아오고 만다. 양반네 가문 공기가 그들을 붙잡기에는 너무 싸늘했을 터.

다산과 부대끼며 살면서도 늘 그림자 신세였던 관계로 눈물을 머금고 살았던 이가 어디 홍임 모 뿐이겠는가? 어린 딸 홍임은 20세가 넘자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빛을 가지려고 살았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며 살겠다.” 백련사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해버린다.

정찬주 작가는 “다산이야말로 한국인이라면 결코 잊어서는 안될 정체성을 한껏 발현하고 살았던 분이다.”며 “오늘 우리들이 어느 분야, 어떤 어려운 상황에 놓이든 간에 영혼의 스승으로 삼아도 좋을 너무도 인간적이고 진실한 분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우리가 몰랐던 인간 다산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고 방송인들이 다녀갔다”며 “뜻을 모으면 꿈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도 화순땅과 다산이 맺은 인연이 소상하게 펼쳐진다. 1777년 열여섯 살 다산이 1년 전 결혼, 여자의 몸을 알기시할 무렵 화순 현감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화순으로 내려와 동림사에서 ‘맹자’ 열공에 빠져 실학의 기초를 닦았다.

다산은 능주 조광조 유배지를 거쳐 내친김에 이양 쌍봉사 자락 조대감골을 찾아가 참배했다.

또 적벽을 유람하기도 하고 무등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기르면서 화순 산하에 무척 감동을 받았다.

지난 2002년부터 화순군 이양면 항일의병 유적지 ‘쌍산의소’ 입구 이불재(耳佛齋)에 기거하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정찬주 작가.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산은 산이요 물은 물>, 법정 스님 이야기를 담은 <소설 무소유>, 한글 창제의 주역 신미대사를 연구한 <천강에 비친 달>, 그리고 임진왜란을 새롭게 그린 <이순신의 7년> 등 주옥같은 작품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