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사? 어떤 부모?
어떤 교사? 어떤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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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uh3388@hanmail.net
  • 승인 2012.11.1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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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천 해남동초 교사
   
 
▲ 김석천 해남동초 교사
 
가을이 깊어간다. 아파트에서 건너다보이는 해남의 안산인 금강산의 색깔도 물감이 번져가듯 날마다 변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가을을 맞았다. 3월에 입학을 했으니까 불과 8개월을 함께 생활했을 뿐인데 알이 꽉 찬 밤처럼 많이도 야물어졌다.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음미해 본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대추 한 알이 저절로 붉어지고 둥글어질 수 없듯이 우리 아이들의 가을도 부모님의 사랑과 조바심과 애탐과 희생, 그리고 담임의 자그마한 수고가 곁들여 오늘 가을을 맞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가을에 아이들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아이들이 예쁘다. 아이마다 색깔이 다르다.

아이들을 보면서 ‘저 아이들의 모습은 교사의 거울이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에서는 경문왕의 귀 설화[景文王 說話]에 나오는 복두장이처럼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인 줄 알면서도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 없어 애만 태우던 복두장이가 아무도 없는 대나무 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네”라고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던 것처럼 겨울을 맞이하기 전 뒷산 대나무 숲으로 가서 한번쯤 소리치고 싶다.

“아이들의 모습은 교사의 거울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부모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이 외침은 지금까지의 교직생활 중 언제부터인가 가슴에 머물러 있던 소리이다.

교실엔 저마다 성격과 자라 온 과정과 현재의 환경이 다른 아이들이 함께 생활한다. 그러기에 부모님이 가정에서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의 여러 모습들이 상대적으로 비교되어 잘 드러나며 아이들을 통해 가정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란다. 그럼에도 내 아이의 참 모습을 아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공부해라’라는 말 대신에 ‘사람 되라’는 말을 하는 부모는 또 얼마나 될까? 아이들을 보면서 간간히 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매년 힘들어지며 소통과 협력이 아쉽기 만한 현실 때문이다.

학년 초 ‘우리 아이를 때려서라도 사람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찾아오셨던 한 아버지의 말씀이 지금도 가슴에서 기억되고 따스하게만 느껴지는 건 내 아이를 알고 담임을 신뢰해 준 마음 때문이리라.

교원능력평가 기간이다. 이 교원능력평가 기간에 교사가 한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해 흘렸던 땀 몇 방울,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그리고 가슴 졸였던 시간들을 이해하는 학부모님들, 아이의 장래를 위해 같이 고민했던 학부모님들에게 보여졌던 교사의 모습 그대로를 공정히 평가받고 싶다. 그리고 복두장이가 말하지 못해 병이 났던 그 소리를 한번만 더 해보고 싶다.

“교사를 평가하는 이 기회에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부모인가를 냉정히 평가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이 소리는 단순한 감정의 울림은 아니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와 지역공동체가 함께 고민해 나가야할 과제이며 책임이기에 우리 아이를 바로 알고 함께 책임을 지고 걸어가 보자는 복두장이의 소리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희망의 아이콘 하나씩을 안고 매일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며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교육의 본질을 향해 함께 나아갔으면 하는 소망을 담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지금 울리는 소리이다.

내가 좋아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우리 아이들 모두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그들을 꽃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의미가) 되었으면 싶다.

글을 마무리하며 보다 나은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함께 염려해 주시고 고민해 주신 참 좋으신 학부모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올리고 싶다. 대추 한 알도 저절로 붉어질 리 없고 둥글어질 리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오늘 복두장이의 가슴에서 울리는 소리가 희망의 소리로 변화될 그 날을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