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금지, 바람직한가?
선행학습 금지, 바람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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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uh3388@hanmail.net
  • 승인 2013.05.2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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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전남도교육청 무지개학교담당 장학관
   
 
▲ 장병호 전남도교육청 장학관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시험문제를 교과서 외에서는 절대 출제하지 않도록 하고, 선행학습 부분도 시험에 출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대선 후보시절부터 줄곧 해왔던 이야기다. 조만간 선행학습 금지에 대한 법안이 발표될 텐데,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생각되나,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원래 학습 진도란 학습자의 능력에 따라 빨리 나갈 수도 있고 늦게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학습능력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진도를 정하는 것은 학력 향상을 제한하는 꼴이 된다.

오늘날과 같이 창의적인 융합인재를 길러야 하는 시대에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지, 학습 진도를 규제하는 것은 달리는 말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게다가 출제 범위를 교과서에 국한하는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출제를 교과서에 한정하는 것은 교과서 내용만 가르치고 다른 것은 가르치지 말라는 이야기다.

옛날에는 교과서를 절대적인 정전(正典)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수많은 학습자료 중의 하나로 보는 추세이다.

교사는 교과서를 기본으로 하되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 세상에 널려 있는 다양한 매체들을 교재로 동원할 수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온갖 세상사를 들여다보는 정보 홍수의 시대에 교과서 하나만 고집하는 것은 지식정보 사회의 현실을 모르는 구시대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과거 1980년대의 대입학력고사 시절이 생각난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수학능력시험이 등장하기 이전으로서 출제 범위를 교과서로 못 박아놓고 있었다.

그래서 교과서만 들이파면 점수가 나오기 때문에 굳이 다른 책은 들춰볼 필요가 없었다.

학생들이 교과서가 아닌 다른 책을 읽는 것은 죄악시되었다. “그따위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어? 공부해야지!” 그 때 선생님들이 흔히 하던 말이다. 교과서를 읽어야 공부하는 것이고, 다른 책을 펼치면 노는 것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자연히 학생들에게 다양한 독서 기회가 봉쇄될 수밖에 없었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한창 책 속에서 꿈과 정서를 가꾸어야 할 나이에 그 무슨 형벌이었던가!

다행히 1990년대에 수학능력시험이 생기면서 교과서 밖 출제로 바뀜에 따라 독서가 강조되기 시작했는데, 그 만큼 입시제도가 교육현장에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정부가 선행학습을 문제 삼은 것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인데, 정작 선행학습이 횡행하는 곳은 사교육 시장이다.

내 아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세워보고자 하는 학부모의 욕심과 그것을 부추기는 사교육의 장삿속이 어울려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사교육의 현주소가 아닌가.

그렇다면 선행학습을 규제해야 할 곳은 학교보다는 사교육시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선행학습의 규제 대상을 학교로 하였으니, 이것부터가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교육이 성행하는 근본 원인은 대학입시에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믿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통해 강도 높은 경쟁을 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입시가 엄존하는 한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과거 1980년대 과외금지 시절에도 암암리에 ‘몰래바이트’란 것이 성행했지 않았는가. 오바마 대통령이 인정한 대한민국의 대단한 교육열 앞에서는 백약이 무효인 것이다.

대학을 나와야 인간대접을 해주는 사회 풍토, 명문과 비명문,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등의 서열화로 인해 아무리 대학이 많이 생겨도 입시 경쟁은 여전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치통을 앓는 환자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진통제가 아니라 앓는 이를 제거해주는 것이다.

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입시 체제를 그대로 놔두고는 아무리 뾰족한 대책을 내놓아도 교육 현장의 병폐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정부에서는 지엽적인 부분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