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 청춘로드, 열정으로 이해하고 싶었던 여행
문종성 청춘로드, 열정으로 이해하고 싶었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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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8.1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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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뛰는 방향으로…3360시간 동안의 멕시코 자전거 여행<58·마지막회>

“200페소!”

“네??”

“벨리즈 넘어가려면 당연히 국경 통행료 내야지. 몰랐어??”

4개월 반 동안 멕시코 북서부에서 이곳 남동쪽까지 힘겹게 달려왔다. 마지막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려는데 난데없이 통행료를 내라는 멕시코 국경 검문소 직원의 말이었다. 여권은 이미 그에게 넘겨져 있었고, 난 외로운 섬 하나가 되어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통행료를 내지 않을 경우 혹시 모를 불상사가 염려됐다. 가뜩이나 험상궂게 주름진 그의 거들먹거리는 태도 때문에 지레 겁을 먹게 됐다.

난감했다. 어디에서도 통행료를 내야 한다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 멕시코 입국할 때 6개월 체류 허가를 받으면서 국경에서 그보다 적은 금액의 돈을 낸 적이 있긴 했다. 혼란스러웠다. 직원은 내 여권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하니 어서 돈을 달라며 오른손 엄지를 중지와 검지에 비비고 있었다. 내 뒤에 아무도 없어서 그리 급할 것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장기 여행자 개코에 뭔가 비리의 냄새가 났다.

3월의 멕시코 남부는 숨이 턱턱 막힌다. 이제 곧 보게 될 벨리즈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던 가슴마저 답답해져 왔다. 그래도 수교국인데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진 않을까 한국 여행자가 멕시코 국경을 벗어날 때 따로 지불하는 요금이 분명히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볼 것도 없이 당연하다며 일처리를 재촉했다.

“한국 여행자 어디 한둘 보나? 다 이쪽으로 해서 벨리즈 넘어간다네.”

별 수 없이 통행료를 지불하려고 지갑을 꺼내 들었다. 200페소면 근 5일치 생활비인지라 부들부들 손이 떨려왔다. 그때 버스에서 내리는 단 한 커플의 배낭 여행자를 발견했다. 강한 햇살을 받아 찌푸린 인상으로 오랜 여행에 심신이 피로해 보이는 서양인이었다.

순간 필이 꽂혔다. 왠지 모르게 실마리가 해결될 것 같은 작두 탄 느낌이었다. 반가운 마음과 혹시나 하는 기대로 창구에 양해를 구하고 그들에게로 가려고 했다. 통행료 문제를 잠깐 물어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성냥갑처럼 좁디좁은 창구에서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가는 거야? 빨리 처리해야 돼!”

“잠깐만요. 이봐요. 혹시 여기 국경 넘어갈 때 통행세 내야 하는 건가요??”

“어허, 얼른 오라니깐!”

검문소 직원의 표정과 말투는 상기돼 있었다.

“글쎄, 우리도 잘 모르겠는걸요.”

그들의 대답은 김빠진 콜라처럼 시원찮았다.

“빨리 오라고!”

보채는 직원의 말투는 확실히 격앙돼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여권에 도장을 꾹 박아 주며 얼른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라, 그럼 통행료는?

“통행료는요? 안 내도 되나요??”

그는 대답 대신 고개도 들지 않고 연신 오른손으로 파리 내쫓듯 훠이훠이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뒤에 서 있는 서양 여행자를 의식하는 게 확실했다. 중남미 사람들은 정보력이 뛰어나고 말이 제법 통하는 서양 여행자들에겐 정직하고 친절하면서도 상대적 입장에 놓인 동양 여행자는 얕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렇게 허무하게 난 멕시코와의 떨떠름한 이별을 했다. 머잖아 이 땅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줄도 모른 채 말이다.

벨리즈로 들어가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타코가 그리워지며 지난 멕시코에서의 추억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이 길을 달려왔다는 사실조차도 역시 화석화 된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멕시코를 금방 다시 만날 줄 알았다. 금방…이라고 생각했다.

열정. 이것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을 뜻한다. 또한 헬라어로는 ‘신이 그 상황 속에서 함께 한다(God in)’ 라는 뜻이다. 난 이 두 가지 모두 채워가며 멕시코의 머나먼 길을 달려왔던 걸까. 아니면 열정만 앞세우다가 사랑을 잃어버린 적은 없었던 걸까. 무엇보다 열정으로 이해하고 싶었던 여행이다. 물론 나에게 주어진 길을 뜨겁게 사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혜롭지 못해 저지른 서툰 잘못들과 너그럽지 못해 오해한 좁은 편견에 상심한 적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단 하나 무엇보다 스스로를 반성하게 한 여행이란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열정도 사랑도 존재가 있어야 비로소 가치를 함의할 수 있다. 멕시코 자전거 여행에서 나는 먼저 나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후 비로소 열정을, 사랑을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최고의 여행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그것이 방랑이었다 할지라도. 방랑에 청춘이 붙는다면 그만큼 선한 것이 없다. 젊었을 땐 인생을 크게 보고 나가 놀아야 한다. 눈이 충혈된 채 밤새 궁상맞게 인터넷 게임이나 하지 말고 배낭 메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 보자. 그대의 열정이 그대의 인생을 축복할 것이다. 그대의 결심이 인생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을 나는 격려하고 싶다.

여행을 마쳤다는 단순한 이유로 멕시코 국경에서 쾅 찍어 준 스탬프. 하지만 Passport에는 나의 열정이 찍히지 않았다. 나의 열정은 나의 심장에만 찍혀 있다. 처음 국경을 넘을 때의 두려움은 국경을 다시 벗어날 때 가눌 수 없는 진한 아쉬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언젠가 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마주할 때 나는 고백하리라. 멕시코가 있어 진정 행복했었노라고. 멕시코에서 만난 모든 이여, 너의 인생 아름답기를, 그리고 나의 인생 아름답기를.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