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음악과 여행-삶이 축제인 보이슨 사람들…우즈베키스탄③
윤소희의 음악과 여행-삶이 축제인 보이슨 사람들…우즈베키스탄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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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8.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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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슨의 ‘라흐마둘라’ 촌장 댁, 60년대 한국의 시골집과 같이 마당 저만치 담을 둘러친 마구간에 소가 음매 음매 울고, 새벽이면 닭이 울어 잠을 깨운다. 웅덩이를 파서 나무판자를 덮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양철 함지대야에 세수를 하고는 마당에 걸린 양철 테두리를 한 책받침만한 거울을 온 식구가 돌아가며 봐야 했다. 유일하게 다른 것이라면 텃밭에 빨간 양귀비가 피어 있고 부엌에 가스가 들어오는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촌장 네 가족과 같이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데 이곳 방식대로 살구와 건포도 등 견과류를 시작으로 야쿠르트, 토마토 즙, 얇게 구운 빵, 버터, 양고기 스프에 쌈과 야채 등 그야말로 우즈베키스탄 시골 밥상이다. 식사를 마치고는 서로 눈치를 보며 볼일을 보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그 바람에 허둥대며 축제장으로 가는 버스를 향해 달려야만 했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초원 한가운데 마련된 축제 마당, 원형의 무대 맞은편에 관람자를 위한 계단식 객석이 설치돼 있는데 햇볕을 가리는 지붕도 없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내려 쬐는 뙤약볕에 종일 앉아 있으려니 아득했지만 긴 옷과 모자를 쓰니 금세 서늘해졌다. 습도가 낮은 이 지역 기후가 오히려 깔끔하게 여겨졌다.

무대 뒤편의 들판에는 수십 개의 원추모양의 천막이 쳐져있는데 바로 그곳이 각 팀들의 분장실인 셈. 그런데 그 천막이 이 지역의 주택이라니 건조한 지역의 간편한 주거환경이 부럽기도 하다. 천막마다 이 지역 특산품인 카펫이 가지각색이라 구경할 것이 여간 많지 않다. 이 천막 저 천막 기웃거리다 보면 카펫을 사라고 넌지시 눈을 찡그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구경하러 왔다고 자리를 뜨려고 하면 두드리던 북이며, 악기들을 내밀며 한번 해보라고 열성이다.

‘보이슨’은 이곳의 산 이름에서 비롯된 마을 이름이다. 해발 2500㎞에 달하는 보이슨 산의 눈이 녹아내리면서 평야를 이루어 만들어진 곳이 ‘보이슨’이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지만 날씨는 봄과 같이 포근하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그토록 맑고 따스해 보이는 것일까. 보이슨산의 정상은 한 여름에도 눈이 덮여 있는지라 무대 뒤편으로 보이는 산등성이 일부러 무대 장식으로 둘러놓은 듯 환상적이다.

축제 이름도 ‘보이슨 바호리’, 보이슨의 봄이라는 뜻이다. 아이들부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참여하는 민속경연대회라 이들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이 가장 큰 볼거리였다. 물레 돌리는 처녀, 동네 무당, 베틀 짜는 아낙, 개 구진 남자 아이들이 발을 구르며 추는 춤, 여자 아이들이 동생을 등에 업고 뛰는 모습이며 가지가지 풍경들이 정겹다.

이들의 축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남자 무당들이었다. 한국에서도 굿판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무당을 ‘박수’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박쉬’라고 한다. 발음이 너무 닮았다. 박쉬들은 악기를 타면서 노래도 하는데 이런 노래들은 중국의 신장위구르 지역의 서사음악과 같은 계통이다. 노래 반주로는 대개 투타르를 퉁긴다. ‘투타르’는 두 개의 줄로 된 악기라는 뜻이다. 실을 ‘타래’라고 하는 것과 견주어 볼 때 우리말과 거의 같다. 세 줄로 된 악기는 ‘시타르’라고 하는데, 인도의 ‘시타르’와도 거의 유사한 발음이다. 이를 한국말로 해 보면 ‘세타래’다. 인도, 우즈베키스탄, 한국이 연결되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박쉬들이 타는 악기 중에 가장 신기한 것은 입에 줄을 물고 입술과 구강을 움직여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이는 일명 구금(口琴)이라는 것인데, 예전에 우리네 시골에 어른들이 입에 뭔가 물고 소리를 내는 것을 본적이 있어 마치 어린 시절 동네 할아버지를 만난 듯했다.

한국음악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악기가 장구라면, 이곳에서는 테에 철사 고리를 달아서 찰랑거리는 커다란 탬버린 모양의 타악기가 그 역할을 한다. 이 악기로 리듬을 짚어 가는 것이 대부분 한국의 자진모리장단과 유사해 친근감이 간다. 우리의 장단과 너무도 닮은지라 탬버린만 잡으면 금방 장단이 나올 것 같아 한번 해 봤다. 금세 ‘따다다 따다다’하고 치니 잘한다고 반색을 한다. 재미난 것은 이곳 처녀들은 머리도 세 갈래로 땋는다. 그야말로 3의 합체인 것만 같다.

이곳에는 아이들도 모두 춤의 명수들이다. 낮선 외국 손님 앞에게도 서슴없이 손을 내밀며 춤추자고 하는지라 혹 북한 사람들처럼 ‘훈련된 매너’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구경하던 아이들이 수시로 무대에 뛰어 올라 춤을 추거나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폴짝폴짝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는 이런 의심이 괜한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 중에 노래도 잘하고 선하게 생긴 어떤 박쉬아저씨는 밤마다 우리 숙소로 와서 놀다 갔다. 생긴 모습이 한국 사람과 흡사해 ‘강원도아저씨’라 불렀다. 그러자 ‘강원도 아저씨!’가 무슨 뜻이냐고 되묻는다. ‘잘생겼다’는 뜻이라고 하니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라한다. 그 모습에 우리 일행이 까르르 웃으니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덩달아 웃는다.

이럴 때는 서로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 고맙다. 한국말을 러시아어로, 러시아어를 다시 우즈베크어로 통역해야하니 한 마디 하면 여섯 다리를 건너야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대충 눈빛으로 알아듣는 것이 더 낫다. 권주가 한 곡에 술 한 잔, 밤새도록 놀아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오해와 이해 속에 엉뚱한 농담이 오가기 때문이다. 때로는 한국말로 “저 자식이 뭐래?”라고 말하면 그 아저씨 왈 “고맙습니다”는 눈빛을 보낸다. “에라이 모르겠다 노래나 한 곡조 하자~” 강원도 아저씨가 투타르 반주에 가락을 읊조리면 남은 사람들은 코러스까지 넣는다. 긴긴 노래가 끝없이 이어지는 사이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별들도 잠들어 버린 새벽 뜰에 닭이 운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