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 만학도, “나도 중학생이 될 수 있어요”
66세 만학도, “나도 중학생이 될 수 있어요”
  • 홍갑의 기자
  • kuh3388@hanmail.net
  • 승인 2012.01.30 2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0년 넘게 묵은 초등학교 졸업 자격 인정
부모와 자식을 돌보느라 자신의 학적이 누락된 지도 모른 채 배움의 기회를 놓친 60대 여성이 우여곡절 끝에 초등학교 졸업 51년 만에 중학교 입학 자격을 취득했다.

주인공은 전남 순천에 사는 윤자(66)씨. 윤 씨는 6·25휴전 이듬해인 1954년 4월 순천중앙초등학교에 입학해 1961년 3월 졸업했다.

윤 씨의 학창생활은 그러나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3학년을 마치고 4학년 재학 중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1년을 꿇어야만 했다.

'낙제생'이라는 놀림을 당하며 7년 만에 생애 첫 졸업장을 받아 들었고, 매산중학교 입학시험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이번엔 가난이 발목을 잡았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서울로 대학을 간 오빠가 군에 입대하고, 농부인 아버지가 혈압으로 쓰러지면서 어린 나이에 가정을 돌봐야 할 처지에 놓인 것.

미용기술을 배워 생업전선에 뛰어든 윤 씨에게는 결혼생활 역시 녹록치 않았다. 시어머니가 갑작스런 노환으로 몸져누우면서 20여년을 시부모 봉양에 매달려야 했고, 슬하의 1남2녀까지 키우느라 눈 코 뜰 새가 없었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학력이 인정되는 평생교육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전해 듣고서는 수십 년간 가슴 한켠에 묻어뒀던 배움에 대한 갈망이 용솟음쳤다. 그 길로 학교로 달려간 윤 씨는 비슷한 또래의 만학도들을 보고는 억누를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공부하는 모습이 너무나 이뻤어요. '나도 저 자리에 앉고 싶구나'하는 생각에 코 끝이 맹맹해지고 자꾸 눈물이 났어요."

그러나 이번엔 학적이 문제가 됐다.

초등학교 졸업대장에서 그의 이름 석 자는 빠진 상태였고, 졸업증서 번호도 없었다. 1년 꿇은 것도 서러운데 학적마저 그는 억울한 나머지 행정실 등 여러 곳에 읍소도 해봤지만 돌아온건 "규정상 어렵다"는 대답뿐이었다.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난 건 지난해 12월. 학교 실태점검 차 내려온 전남도교육청 감사반을 우연히 만나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움을 청한 게 희망의 싹이 됐다.

딱한 사연을 접한 한 감사반원이 한 달간의 노력 끝에 중학교 입학자격을 되살려준 것.

평생교육 시설의 교장과 교감을 직접 만나 구제 방안을 논의하고 50여 년 전 자료를 뒤지고 당시 동창생 4명과 그 당시 교생 실습생으로부터 사실 확인을 근거로 윤 씨가 이 학교 '13회 졸업생'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졸업 51년만에 정식 졸업장은 받은 윤씨는 30일 "꿈을 꾸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명문대를 졸업한 두 딸과 인천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아들의 뒤를 이어 "칠순이 되기 전에 학사모를 쓰고 싶다"는 게 윤씨의 당찬 바람이다.

전남도교육청 감사실 박진수 주무관은 "어르신의 딱한 사연과 배움에 대한 열정을 보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났다"며 "50년 넘게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해 준 것 같아 무척 기쁘게 공직자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