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모닝] 홍갑의 편집장 = 민선9기 여수시가 93개 공약사업을 내놓으며 '시민 속으로, 세계 속으로 다시 뛰는 여수'를 시정 비전으로 제시했다.
사업비만 6조 2413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청사진이다. 시민주권도시에서 미래도시까지 5대 분야를 아우르는 내용도 방대하다. 얼핏 보면 여수의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대담한 계획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약은 규모보다 실현 가능성이 우선이다. 아무리 화려한 비전이라도 실행할 수 없다면 시민에게는 희망 고문에 불과하다.
이번 비전 실현을 위해서는 가장 큰 문제는 재원 구조에 있다. 전체 사업비 6조2413억원 가운데 국비가 5조7507억원으로 92%를 차지한다. 자체 재원인 시비는 3370억원 수준이고 민자 유치도 904억원에 그친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업이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과 예산 지원 여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셈이다.
대표 사업으로 제시된 여수IC 건설과 고속도로 연장 사업은 국가 도로망 계획 반영과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라는 관문을 넘어야 한다. 여수시의 의지만으로는 추진이 불가능하다.
동부권 특화형 여수과학고 유치 역시 교육청과 교육부 승인, 인근 지자체와의 경쟁이라는 변수들이 존재한다. 여순사건 평화재단과 평화공원 조성 또한 국가 차원의 정책 결정 없이는 현실화하기 어렵다.
결국 시민들이 궁금한 것은 공약 목록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업이 여수시의 자체 노력으로 추진할 수 있으며, 어떤 사업이 중앙정부의 결정에 좌우되는지에 대한 솔직한 설명이다.
물론 시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들도 있다. 시민소통폰 운영, 시민주권위원회 구성, 청렴도 향상 정책, 공약 이행 공개 등은 비교적 단기간 내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들이다. 시민 체감도 역시 높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만으로는 지역경제를 견인하거나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
관광 분야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3박 6색 체류형 관광도시'는 새로운 비전이라기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제시됐던 체류형 관광 전략의 연장선에 가깝다.
엑스포장 활성화와 해양관광 확대도 오랜 기간 반복되어 온 과제다. 이제는 구호나 계획이 아니라 구체적인 성과와 실행 결과를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더욱이 여수산단 화학소재 연계 신산업 클러스터와 블루푸드 테크 스마트 단지 조성은 정부 정책 지원과 대규모 민간 투자 유치가 전제되지 않으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현실적인 투자 확보 전략과 기업 유치 방안이 함께 제시되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선언적 공약에 머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약은 숫자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93개의 약속보다 실제로 완성된 하나의 사업을 더 높게 평가한다. 중요한 것은 몇 개의 공약을 발표했느냐가 아니라 몇 개를 실현했느냐다.
서영학 시장이 강조했듯 공약은 시민과의 약속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 구체적인 로드맵이다. 언제까지,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떤 예산을 확보해, 어떤 결과를 만들 것인지 시민들에게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
여수의 미래 100년을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시민들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앞으로 4년 동안 실제로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이다. 민선9기의 성공 여부는 공약사업 93개라는 숫자가 아니라 시민들이 체감하는 변화의 크기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