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재보선]김선동 순천 국회의원 당선자
[4·27재보선]김선동 순천 국회의원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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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4.2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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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순천국회의원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출신 무소속 후보들을 누르고 최종 당선된 민주노동당 김선동(43) 당선자가 축하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뉴시스]
 
[4·27재보선]김선동 순천 국회의원 당선자

27일 순천국회의원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출신 무소속 후보들을 누르고 최종 당선된 민주노동당 김선동(43) 당선자가 축하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신중에 또 신중. 4·27순천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힘겹게 야권연대단일후보로 선거에 나선 김선동(48)당선자와 전남 최초 국회의원 당선을 기대한 민주노동당은 선거기간 내내 신중론을 외쳤다.

민주당 텃밭에서 야권연대 단일후보로 나선 선거전에서 다소 유리할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도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후보 5명과 평민당 성향의 무소속 후보 1명 등 쟁쟁한 후보들과 맞서야 하는 부담감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당선자는 내년 총선과 정권교체, 야권연대의 당위성을 외치며 전남 최초로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에 당당히 당선됐다. 민주노동당의 승리라기보다는 순천시민의 야권연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이번 보궐선거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됐다.

당선이 확정된 순간 이정희 당 대표와 강기갑 의원과 함께 두 손을 치켜든 김 당선자는 “선거기간동안 보내주신 순천시민의 관심과 사랑에 대해 모든 마음을 담아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곳곳에서 전해 온 시민들의 가르침을 항상 유념하겠다”고 겸손한 인사로 말문을 텃다.

그는 이내 “저의 당선은 순천시민 모두의 승리이자 야권연대와 정권교체의 의지를 보여준 민심의 선택이었다"면서 "하늘의 뜻을 따른다는 이곳 순천의 민심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서 결국 야권연대의 승리와 정권교체 실현의 희망을 온 국민들에게 전하게 됐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김 당선자는 “야권과 시민사회가 단결해 이명박 정부의 독주를 막아내고 민주주의와 서민경제의 부활,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반값등록금 실현, 남북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장 등 야권연대의 이름으로 약속하고 실천해 순천시민과 국민의 튼실한 밀알이 되겠다”면서 “반드시 내년 총선과 정권교체의 여망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순천시와 의회, 정당, 시민사회단체 등 원활한 협의체계를 구축하고 국회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며 경쟁한 각 후보들의 지역발전 청사진들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반영하는 등 지역민을 위해서라면 정당과 정치적 입장을 떠나 헌신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남 고흥군 도화면 발포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김선동 당선자는 고려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해 물리학자를 꿈꿨으나 1988년 미문화원 점거 투쟁으로 구속과 제적을 당한 후 노동현장을 전전했다.

1997년 '국민승리21'을 거쳐 1999년 진보정당 창당이 추진될 때 김 당선자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합류했으며,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당시 광주시지부 조직국장 맡아 광주에서 당을 건설하는데 산파역할을 맡았다.

이후 김선동 후보는 2000년 전남 여수와 순천의 노동자들이 대거 당에 가입하자 간부가 부족한 순천에서 민주노총 정치위 간사로 활동하며 순천과 정치적 사랑을 시작했다. 1985년 상경한 후 15년만에 타향살이를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셈이다.

그는 순천에서 2년간 순천시당을 비롯한 여러 지구당을 개척하고 광주시지부에 이어 전남도지부를 건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2006년 민주당 사무총장 등 요직을 맡으며 사실상 진보정당운동의 씨를 뿌렸다.

하지만 국회의원 후보가 되기 불과 한 달 전까지 노동현장에서 건설노동자로 살면서 진정한 노동운동을 온몸으로 실천한 차세대 지도자라는 평을 받았다.

▲순천고졸 ▲고려대 물리학과 입학 ▲1988년 10월 광주학살 진상규명 촉구 미문화원점거로 구속 ▲민노당 순천지구당 위원장 ▲ 민노당 전남도당 위원장 ▲민노당 전남도지사후보▲ 2006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